고전열전(古典列傳) No.6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전체 규모는 1637억엔. 1년에 제작되는 편수만도 100~150편을 왔다갔다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TV 애니메이션이 1년에 30∼40편 정도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근래 10년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처럼 호황을 맞고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노라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한국은 언제나 되야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저렇게 될 날이 올수나 있을까 걱정만이 앞섭니다. 그정도로 이제는 일본과 한국의 애니메이션 사이에는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처음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세계를 제패할만큼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은 어차피 남의 나라 뒤치닥거리나 하는 하청업으로 전락할 운명이었을까요?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1960년대. 전란의 황폐함을 딛고 서서히 서양문물이 도입되어 일반 대중들에게 크나큰 문화적 충격을 주기 시작한 이 시기의 사람들은 필름 영상물이 주는 신기함에 어쩔줄 몰라하며 그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월트 디즈니로 대표되는 일련의 만화영화들은 영상물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장르였지요. 실사가 아닌 그림이 살아있는것처럼 움직이니 얼마나 더 신기했겠습니까?
애니메이션의 독특함에 매료된 몇몇 사람들은 이를 곧 상업광고에 접목시키기 시작했고, 1957년 럭키 치약이 한국 최초로 애니메이션 CF를 도입한 이래 수많은 광고용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환경을 바탕으로 한국의 초창기 애니메이터들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지요. 그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원기소의 CF 애니메이션부터 손발을 맞춘 신동헌 감독과 넬슨 신(신능균)[각주:1] 콤비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1년에 무려 100편에 육박하는 CF를 제작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다가 진로소주 CF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이 분야 최고의 실력자로 떠오르게 되지요.
1965년의 어느날.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신동헌 감독은 당시 잘나가던 영화사인 세기상사로부터 뿌리칠 수 없는 제의를 받게 됩니다.
“우리도 장편 만화영화 한 번 만들어봅시다!”
마침내 CF 애니메이션의 틀을 벗어나 더 넓은 포부를 실천할 기회를 얻게 된 신동헌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이 될 작품의 소재를 신중하게 고려하게 됩니다. 그는 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성격상 뚜렷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가진 의적 이야기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데요, 흥미롭게도 당시 만화가로 활동중이었던 동생 신동우 화백의 연재만화 '풍운아 홍길동'은 이러한 신 감독의 구상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였습니다. 활극의 요소과 모험, 그리고 무엇보다 원작 자체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은 '최초'라는 의미에서 보다 깊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1965년 6월 25일부터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한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 1969년까지 무려 1300회의 신문연재를 마친 초장수 인기 만화로서 허균의 원작소설에 호피, 차돌바위, 곱단이 같은 오리지널 캐릭터를 추가해 새로운 모습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대단히 힘든 여건속에서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제작비의 문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시도하는 작품이니만큼 '노하우'가 전무한 상황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지요. 일반적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한 편에 참여하는 스탭의 수는 200명 이상. 그 당시 [홍길동]에 동원된 인력은 고작 40여명[각주:2] 뿐. 그 중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유경험자는 한사람도 없었고, 셀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필수적인 재료도 없는 상황. 동화에 필요한 셀룰로이드를 대신해 미공군의 항공 촬영 필름을 씻어서 재활용한 에피소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이라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건 바로 이런걸 두고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열악하다 못해 황폐한 환경속에서도 신동헌 감독이 웬만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나 사용할 법한 정공법으로 제작을 감행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1초에 24프레임을 사용하는 '풀프레임 애니메이션'을 고집한 것이나 제작방식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레스코 방식 (선녹음-후작화)'을 채택한 것이지요. 물론 신동헌 감독에게 이러한 기술적 노하우를 알려준 이는 없었답니다. 순전히 본인 스스로가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익힌 테크닉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월트디즈니 같은 대형 제작사에서 사용하는 기법이었다니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천재는 1% 영감과 99%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완성된 [홍길동]은 사용된 셀화만 무려 125,300장[각주:3], 제작비 5400만원 (1960년대의 물가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금액임)이 투입된 대작으로 완성됩니다. 물론 신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은 개봉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도 최종 편집을 마치느라 녹초가 될 정도로 강행군을 이어가야 했지요.
12만 5천장이 넘는 셀화가 사용된 [홍길동]. 황무지와 같이 척박한 국내의 환경에서 기적과도 같은 퀄리티를 일구어낸 [홍길동]의 작화 수준은 지금봐도 손색이 없다.
마침내 1967년 1월, 한국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서울의 대한극장과 세기극장, 부산의 문화극장과 동보극장 등 전국의 주요 극장에서 개봉됩니다. 개봉당일, 교통 기마대가 출동해 충무로 일대를 통제해야 할 정도로 [홍길동]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는데요, 나중엔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세기상사 측에서 500명 관객 단위로 고객에게 3Kg짜리 백설탕을 한 푸대씩 선물하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지요.
결국 [홍길동]은 최종 관객 30만명을 동원하는[각주:4] 대박을 터트리며 한국 영화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제6회 대종상 문화영화 (비 극영화 부문) 작품상,제4회 남도영화제 문화영화상 등을 수상하는 등 실사영화에 버금가는 공헌도를 인정받는 등 명실공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쾌거를 이룹니다.
[홍길동]은 원작소설의 기본적인 컨셉을 베이스로, '풍운아 홍길동'의 캐릭터와 신동헌 감독 스타일의 캐릭터 리뉴얼,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걸맞는 각색을 거쳐 매우 복합적인 성격의 창작물로 거듭난 작품입니다. 일단 원작에서 주요 인물중 하나인 홍길동의 형이 빠졌고, 따라서 '호부호형(呼父呼兄)' 하지 못하는 홍길동의 비애 중 '호형'부분은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 안타까워 하던 중 집안 식구의 음모로 암살의 위기를 넘긴 후 집을 떠나는 홍길동전의 플롯은 대략 허균의 원작과 비슷합니다. 다만 '풍운아 홍길동'에서 오리지널 캐릭터로 등장했던 차돌바위가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원작소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요.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조도 원작 소설에서 크게 빗나가지는 않습니다. 출가한 홍길동이 차돌바위를 만나 악행을 일삼는 탐관오리를 징벌하기 위해 백운도사를 찾아가고, 활빈당이라는 도적떼에 합류하는 것 그리고 악당들과의 일전을 벌인 후에 극적으로 아버지와 상봉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우리가 학교 국어시간을 통해서도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이지요.
그럼에도 [홍길동]이 뛰어났던건 애니메이션의 오락적 재미와 탄탄한 구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풀 프레임을 사용한 만큼 동작의 유연성과 작화의 섬세함도 후세대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건 [홍길동]의 내용중에 해골바가지들이 일어나 아리랑 댄스를 추는 장면이 있는데요, 갑자기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에서 용가리가 아리랑 곡조에 맞춰 댄스를 추는 장면과 오버랩되어 한참을 웃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두 작품 모두 1967년에 개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하지만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효과를 정작 [홍길동]의 주역이었던 신동헌 감독과 그의 스탭들은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습니다. 몰지각한 제작사와 영화 관계자들의 잇속 차리기에 밀려난 신동헌 감독은 제작비의 회수는 커녕, 원본필름을 돌려받는데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당시 상식이하의 인간들이 저질렀던 추악한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할 정도입니다) 결국 신동헌-신동우 형제는 후속편인 [호피와 차돌바위]를 제작하기 위해 극동흥업과 손을 잡게 되고 세기상사와는 결별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호피와 차돌바위] 리뷰를 참조)
이렇게 신동헌 감독과 스탭들을 배신한 세기상사는 뻔뻔스럽게도 1968년 [쾌남 홍길동]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봉을 단행하는데 이때 크래딧에서 신동헌 감독의 이름을 빼 버리고 박삼천 감독으로 대체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신 감독에게 원본필름을 주지 않았던 이유가 이렇게 드러나게 된 거죠.
1968년 재개봉당시의 포스터. 제목을 [쾌남 홍길동]으로 바꾸고, 감독의 이름도 박삼천으로 뻔뻔스럽게 바꾸어 놓았다.
전세계에서 5번째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신동헌 감독은 그 역사적 사건의 주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시안적인 제작행태와 만행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애니메이션에서 손을 뗍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데즈카 오자무는 미국의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후 20년간 지속된 후계 체제의 공백을 틈타 '일본 만화계의 신'이라 불리며 일본 열도는 물론 전세계 애니메이션을 재패할만큼의 자양분을 키워나가게 되지요.
한편 역사상 유래없는 흥행 성공과 고퀄리티로 알려진 [홍길동]은 원본필름이나 카피본마저 모두 유실되어 1970년대 이후 세대들은 말로만 들어왔던 [홍길동]의 완성도를 직접 확인할 방법이 전무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옛것의 복원에 대한 필요성이 몇몇 지각있는 팬들에 의해 대두되자 필름 아카이브의 산실인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필름을 찾게 됩니다.
필름의 소재지는 엉뚱하게도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한 소장가의 사설 아카이브[각주:5]. 필름의 주인은 [소년용자 길동]으로 수출되었던 일본어 더빙이 곁들여진 16㎜ 복사본의 기증을 흔쾌히 허락했고, 이 필름을 35㎜로 확대한 뒤 영상자료원에 보관 중이던 한국어 35mm 사운드 네가필름을 입혀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홍길동]의 복원판을 완성[각주:6]하게 됩니다.
2009년 1월 20일. '출동! 한국의 슈퍼히어로' 특별전에서 [홍길동]상영을 앞두고 무대인사를 하는 신동헌 감독의 모습. '이미 40년전 작품이라 허물이 많아 부끄럽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대로 보기에 괜찮았다'는 말에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소박한 긍지가 느껴진다. 한편으로 비슷한 출발선상에 있었으면서도 한국의 '데즈카 오사무'는 될 수 없었던 그의 안타까운 행보가 작품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필자가 영상자료원 내의 시네마테크에서 접한 [홍길동]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복원판으로서 첫 타이틀 자막과 크래딧이 모두 일본어로 나오는 아스트랄한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습니다. 색감 자체도 많이 탈색된 흔적이 역력하지만 보관상태가 기존의 고전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볼때 양호한 편이며 작화나 더빙, 음악 등 모든 부면에 걸쳐 당대 최고였던 이 작품의 명성을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아직 판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DVD출시를 보류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들었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대중앞에 정식으로 공개될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만약 이마저도 어른들의 상술에 놀아나 흐지부지 된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팬들의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거라 생각되는군요.
아무튼 그동안 필름의 존재유무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을 떠든것이 얼마나 공허한 외침이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미래의 영광이 올리가 없겠지요. 언젠가 [쥬라기 공원]과 현대자동차 판매량을 예로 들면서 문화 콘텐츠의 부가가치에 대한 효율성이 논의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렇게 또다시 '돈'에만 집착한 발상으로 애니메이션에 접근해서는 [홍길동]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그보다는 잃어버린 유년시절의 자산부터 빨리 찾아내어 우리 후세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P.S: 사실 고전열전의 두 번째 시간에 소개된 [호피와 차돌바위]보다 먼저 소개했어야 할 작품이었지만, 작품 자체가 너무 희귀한 터라 감상이 쉽지 않아 부득이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참고자료:
저패니메이션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박태견 저, 1997 길벗)
송락현의 애니스쿨 (송락현 저, 1997 서울문화사)
설특집 HD 다큐: 잃어버린 기억-만화영화 홍길동 (2007년 2월 17일 KBS방영)
* [홍길동]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돌꽃 컴퍼니.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풍운아 홍길동 (ⓒ 대교문화. All rights reserved.), 세기촬영소 앞 단체사진(ⓒ 영상자료원. All rights reserved.), 홍길동 스토리보드 (ⓒ 영상자료원. All rights reserved.), 대한극장(ⓒ KBS. All rights reserved.)
- 닐슨 신은 국내에서의 활동을 접고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훗날 [트랜스포머: 더 무비]를 연출하며 북미시장에서 인정받는 애니메이터로 알려졌다. 현재는 ASIFA(국제애니메이션필름협회, Association International Du Film d'Animation) 코리아의 부회장으로 역임중이다. [본문으로]
- 일부 자료에서는 [홍길동]에 투입된 인원이 400명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 이같은 오류가 발생한 원인은 [홍길동]의 개봉당시 12만5천장의 셀화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하루 한사람이 한장을 그리면 400명이 1년간'이라는 광고카피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문으로]
- 이 부분은 조금 논란이 있다. 한국일보, 서울신문의 기록에는 6만장, 그리고 소년 조선일보이는 67,000장이라고 소개되는데, 훗날 신동헌 감독은 서울신문을 통해 이 수치가 'NG로 버린 것까지 포함한'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한편 약 10년후에 제작된 초유의 히트작 [로보트 태권브이]의 동화매수도 4만장 정도이고, 1980년대 이후에 제작된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 동화매수 10만장이 넘는 것은 전무하다. [본문으로]
- '저패니메이션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박태견 저, 1997 길벗)'에서는 [홍길동]의 최종 관객수가 100만명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 극장사상 최초로 100만명의 고지를 돌파한 것은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이며 무려 196일을 상영하면서 가까스로 일궈낸 성과다. [홍길동]의 30만명 동원 역시 훗날 재개봉을 합친 전국적인 관객을 모두 계산한 수치이며 이당시 국내 여건상 100만이란 숫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본문으로]
-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는 오사카 말고도 도쿄쪽의 또다른 아카이브에서도 [홍길동]을 보관중이었고, 복원에 사용한 필름은 보관 상태가 좀 더 양호한 오사카의 보관본을 사용했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역사적 유물을 한국땅이 아닌 일본에서 두 개나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의미를 되새겨볼때 실로 수치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원본인 35mm 필름은 배급사인 20세기폭스에서도 소장하고 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본문으로]
- 신동헌 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이 복원판도 오리지널에 비해서 약 3분정도가 삭제된 버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원본과 큰 차이는 없으며 스토리의 진행에도 별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35mm 원본필름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상, [홍길동]의 완전판은 영원히 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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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올블러그 투표 결과! 모두 축하드려요!
Tracked from 한일커플의 B(秘)급 여행 삭제올블러그 투표 결과가 나왔네요. 정확하게는 투표 결과만 나왔지, 정확하게 누가 뽑혔는지는 발표가 안된 상황입니다. 저도 운이 좋게 생활분야에 간신히 턱걸이를 했네요.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이런 좋은 결과가 생겨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애초 많은 다른 분들이 지적해 주신대로 투표 진행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블로그 단상들 by Inuit Blogged 2008 올블러그 어워드 후보 사퇴했습니다. by..
2009/02/2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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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판권문제 어서 해결돼서 [끝장에디션] 이런 거로 나와줬음 하는 바램이 있네요.
2009/02/23 12:28디지탈 리마스터링한 버전과 어쩔 수 없는 16mm 오리지날 버전에 뽀나쓰로 신동우 화백의 원작 만화까지 왕창 실린 최소 3디스크짜리 블루레이가 나와도 닥치고 지를 준비가 돼있는데 말이죠. 이런 건 딸라빚을 내서라도 사줘야 합니다.
그나저나, 어릴 때 친척 어르신들 곁에서 달력 뒷장에 그림 그리고 앉았으면 어르신들 한번씩 보고는 우리집안에 신동우 화백 하나 나오겠다 하는 소리 참 많이 들었는데 말이죠. 그당시 어르신들에겐 만화가=신동우화백이란 공식이 잡혀있었죠.
하지만 작금의 현실이란...ㅠㅠ
끝장에디션.. 누구보다도 바라는 바 입니다. 이런건 정말 서플먼트 빵빵하게해서 출시해줘야하는건데,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작품이 DVD로도 나올까말까한 현실이라니... ㅜㅜ
2009/02/23 20:44아아... 가슴이 아프고, 편두통이 재발하네요...ㅜ.ㅜ
2009/02/23 12:29더구나 문화산업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선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니
'이 얼마나 천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나'라는 생각에 우울함마저 엄습합니다.
해골 춤 스틸 샷을 보면서 '팀 버튼?'이란 생각에 살짝 웃었습니다.
그나마 우울한 기분만으로 읽게 되지는 않아서 다행인가요.^^
정말 갈수록 천박해져가는 세태에 짜증이 밀려옵니다. 그저 돈돈돈돈돈....
2009/02/23 20:45문화산업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만큼 정말
2009/02/23 20:27이렇게 많은 편견과 이상한 시선을 받은 분야가 있는지 ㅠㅠ
홍길동 뿐만 아니라...
80년대도 만만치 않았죠.... 아 진짜 그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지금도 한국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제대로 대접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좀 더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만든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는 분들중에도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홍길동뿐만 아니라 천재 하길종 감독 영화조차도 오리지널판이 없고 원본이 소실되어 현재 DVD로 못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일전에 제가 하길종 감독 기사 작성할때 문의하고 알았습니다..)
참 답답합니다....
80년대에 대한 얘기만으로도 몇주간은 포스팅 걱정없이 버틸수있습니다만 그전에 제가 먼저 홧병으로 몸져누울거 같습니다 ㅡㅡ;;
2009/02/23 20:46그 뒤에는 하청과 표절의 역사가 있지만 출발은 좋았군요.
2009/02/23 15:19출발선상은 동일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당시 일본만화나 한국만화나 퀄리티에 있어 별 차이 없었거든요. 문제는 신동헌 감독이 물러나고 나서 부터였죠.
2009/02/23 20:47하청과 표절의 역사의 선봉에 선 자가 바로 넬신 신이란 자죠. 돈 버는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나 한국 애니메이션을 하청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각종 명예는 다 가로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극장판 심슨이 나왔을 때도 자기가 다 만든 것인양 떠벌리고 다녔지만 사실 하청업체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 외 스타워즈 광선검, 트랜스포머 등등도 사실과 다릅니다. 자기 홍보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봐야하죠. 그런 홍보 수단 하나가 애니메이툰이란 잡지라고나 할까요.
2009/02/23 16:27신동헌 감독님이 일선에서 물러난 배경을 살펴보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네요.
자세한 리뷰 및 내용 잘 읽고 갑니다.
넬슨 신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청업의 대부라는 사실도 어느정도 정론화되어가는 추세구요.. 그러나 이번 포스트와는 큰 연관이 없어 언급하지 않습니다.
2009/02/23 20:48참 가슴아프면서 씁쓸한 역사네요.
2009/02/23 16:31이런 역사 때문에 상처받는 분들도 많아지는듯...
그날 신 감독님을 뵈면서 한편으로 정말 씁쓸했습니다. 한 세대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분이 이렇게 노년을 관객도 몇몇없는 극장에 무대인사차 찾아오신 모습이 왜이렇게 눈물나게 안타깝던지요.
2009/02/23 20:51한국 애니메이션계는 한 마디로,
2009/02/23 16:45'돈독 오른 기능공들이 깝죽대면서 예술가 행세를 하고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심한 말이 아닙니다. 직접 겪어본 분들은 아실겁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애니메이션도 나오질 않고,
신동헌 감독님 같은 천재들조차 사장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맺히신게 많은가 봅니다. 태수련님..^^
2009/02/23 20:51아쉽군요.
2009/02/23 17:06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더욱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네요.
볼만한 작품은 국내에서 만들어지질 않고, 부가 판권 시장 침체까지 겹쳐
일본의 작품들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접하기가 쉽지 않은 지금 상황이 정말...
이 작품 만들어지던 당시에 좀 더 잘 풀려나갔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네요. 아쉽습니다 정말...
[홍길동] DVD가 나왔더라면 Terminee님께는 더할나위없는 뽐뿌가 되었을텐데 아까비..
2009/02/23 20:52이런 걸 볼 때마다 참 씁쓸하네요.....
2009/02/23 17:11신동헌 선생님도 그렇고 김청기 감독님도 그렇고(이 분은 스스로 자초한 점도 있지만 -.-;;;)
암튼 이 넘의 나란 참 물질 만능주의자들 땜에 잃어버리는게 너무 많네요.
천박! 천박! 그저 돈돈돈돈돈~
2009/02/23 20:52사실 문화를 산업으로 말하는 자체가 우습죠.
2009/02/23 20:45물론 지속가능한 문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수익이 있어야 하는 거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을 우위로 들어 문화적 측면을 엎어버린다면, 이거야 말로 정말 문제죠.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건 없다고 봅니다.
안 좋은 건 여전히 돌고 도나 봅니다.
워낭소리가 큰 히트를 치고 있는 요즘도 고작 한다는 소리는"얼마 벌었냐"는 거죠.
독립영화 지원을 폐지하고 뭐든지 돈으로만 수익으로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따지는 현 지점에서는
제2의 홍길동은 탄생하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그게 한국 문화계의 수준이라는 겁니다. 이번 [워낭소리]사태는 그 방증이지요.
2009/02/23 20:53블로거뉴스 링크 타고 넘어왔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와, 신동헌 감독. 굉장히 가슴이 아프네요…
2009/02/23 23:19두분은 데즈카 옹의 살아생전 절친한 친구로도 알려져있지요. 다만 데즈카 오사무는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까지 마련되어 있는 반면, 한국에는 신동헌 감독의 이름조차 모르는 어린이가 많다는 거... 정말 안타깝죠.
2009/02/24 09:49제가 로또 되면 이 작품 판권을 꼭 사서 신감독님을 드리고 싶습니다. 휴~
2009/02/24 00:15덧1. 어마어마한 량 → 양
덧2. 신감독님과 신화백님의 상황이 '아이러니'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덧3. 이제 퇴근해야겠습니다. ㅠ.ㅠ
태클모드 분위기?
2009/02/24 09:50에잉~ 설마요... 투정 분위기(응?)
2009/02/24 19:46역사라는 것은 항상 어떤 계기가 있더군요. 동시대의 공존한 사람의 행방으로 인해
2009/02/24 00:44각국의 애니메이션의 흥망이 결정되었으니 말이죠.
그 계기로 인해 한국은 애니메이션=소년 or 어린이 물로 전락한지 오래고
일본은 엄청난 오타쿠들을 양산해내면서 상업성과 작품성이 공존하는 모습이
참 상반되 보이네요. 안타깝습니다. 더이상 되돌릴 수 없으니 말이죠
이 당시 이런 비극의 원흉인 당사자들은 그때 번돈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을까요?
2009/02/24 09:51퀄리티 상당해보이는 군요. 30만명의 관객이라니...
2009/02/24 10:11그 정도면 엄청난 화제작일텐데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너무 돈에만 집착한 결과가 이렇다니...이거 안타깝습니다.
문화컨텐츠를 문화로서가 아닌 돈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꼴이 딱 그상황이구요. 만화,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조차 아작날 판입니다.
2009/02/24 10:13우리나란 정말 희한하게도 아무런 지원도 없는데 뜬금없이 천재가 팍팍 튀어나옵니다.
2009/02/24 12:13하지만 시스템이 그 천재를 죽이죠. -_-;
어쩜 정확하게 지적하셨네요. 시스템이 천재를 죽이는 사회.. 절대 한국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사람이 나올수가 없습니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지요.
2009/02/24 19:25대단하네요. 근데 지금 문화부장관이란 분의 퀄리티를 보면 뭐...
2009/02/24 16:59그 이야긴 하지 맙시다. 성질이 뻗치니까요.
2009/02/24 19:27중간에 해골 귀엽네요ㅠ▽ㅠ 저렇게 깜찍한 해골은 처음 본 듯.... 그나저나 윗분들도 댓글로 달아두셨지만 우리나라 문화계 전반적인 문제는 진짜 한숨나오는 상황인 것 같아요. 전 애니는 아니고 만화가를 꿈꾸고 있는 사람인데 만화 지망생 카페 같은데 찾아봐도 막막한 이야기뿐이고... 어쩌다가 우리나라 만화/애니 산업이 이 정도까지 왔는지 참...;;; 안타깝다고 단순히 말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2009/02/24 19:23애니/만화가 고전하는 이유는 일본시장에 잠식당한 것도 있지만 이 위기를 벗어날 총체적인 제도적 마련이 전무하다는게 문제입니다. 격차가 너무 벌어져 있지요.
2009/02/24 19:28원작의 홍길동이 그러했듯이..애니메이션 '홍길동'도 참 파란만장 한 시간을 보냈군요..
2009/02/25 00:30한 10년전쯤에 투니버스에서 한국 애니에 대한 다큐를 해준적이 있습니다. 그때 홍길동의 필름 한두개가 남아있는 전부라는 소릴 들었을때 속에서 끓어오르더군요. ㅡㅡ;;
2009/02/25 09:34얼마전에 제 네이버 이웃분 중에 한 분이 이 애니를 DVD로 소장하고 싶은데 판권이 일본에 있어서 그런가......하여튼 그래서 소장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푸념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홍길동 애니에 대한 포스트를 보니 그분이 이해가 갈 뿐더러 저도 안타까워집니다......ㅠㅠ
2009/02/26 00:14곰님 말씀이로군요^^
2009/02/26 09:48판권에 대해 잠시 첨언하자면 당시 [소년용자 홍길동]의 배급사는 20세기폭스였습니다. 물론 20세기폭스에도 현재 네가필름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고요, 국내판권은 돌꽃컴퍼니에서 소유하고 있는데 DVD로 나오지 않는 이유가 돌꽃컴퍼니와의 조율문제인지 아님 일본측과의 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영상자료원 관계자는 다만 판권문제로 시간이 조금 걸릴뿐이다라고만 말했거든요. 언젠가 나오긴 할겁니다. 문제는 돈이겠습니다만.. ㅡㅡ;;
그저.. 속이 쓰릴 따름이죠.. - -;
2009/02/26 19:08솔직히 열불나지요 ㅡㅡ+
2009/02/26 22:13좋은 글입니다. ^^ 상당한 역사적 의미와 명예를 응당 받았어야 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가 이루어졌어야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타향살이 끝에 돌아온 명작의 처지가 한편으로는 참으로 안쓰럽지요.
2009/02/27 15:51그래도, 이제 오리지널을 찾았으니 이를 기점으로 후손들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데...
어쨋든 간에 어정쩡하게 내놓지 말고 셔플먼트에 신동우 화백 인터뷰나 제작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 정도는 확실히 담겨진 제대로 된 버전으로 나왔으면 합니다. (당근 사줘야죠, 이런 작품은)
당근 서플포함 3 Disk 정도는 나와야 궁극의 버전이겠죠.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증인]정도의 퀄리티만 뽑아줘도 원이 없겠는데..
2009/02/27 19:26안녕하세요 페니웨이님...
2009/03/03 08:23"소재지는 일본 소장가의 사설 아카이브"에서
보관장소를 의미할 때는 '아카이브즈 (archives)'라고 하시는게 더 좋을듯 합니다.
s가 없는 '아카이브(archive)'가 컬렉션 자체를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동사로 쓰이거든요...
아카이브즈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웹상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되네요...
물론 딴지는 아닙니다...
아카이브: 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
2009/03/03 08:24아카이브에 대한 사전적 정의입니다. Danny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틀렸다는게 아니라 모든 언어에는 관용적인 용법이란게 있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일반적으로 굳어져 용인될 경우에는 그대로 사용하는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소자 입장료가 65원이라면... 성인 입장료가 두배 이상이라고 해도...
2009/04/01 15:31만화 영화의 특성상 연소자 관람객이 많았다고 봤을때 최소 75만명 이상은 들어야 하지 않았겠나 하네요.
캐릭터와 같은 연계사업이 당시엔 없었다고 본다면요... ^^
30만명을 동원 가지고는 제작비도 못 건진 초대형 실패작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제작사측 입장도 이해를....
쓸데 없는 딴지지만 따져보면 그렇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