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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36


 

 

 

 

계모인 왕비의 미움을 받아 살해위협을 받는 마음 착한 공주와 그녀를 돕는 일곱 난장이들의 이야기, '백설공주'를 모르는 분은 안계실 겁니다. 원래는 북유럽의 구전설화였는데, 실로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 오면서 여러 버전이 존재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원래 계모가 아니라 친어머니가 자객을 보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여성의 시체를 좋아하는 네크로매니악 왕자가 죽은 여인의 시신을 차지했다가 깨어났다는 식의 엽기버전도 있으며, 16세기 독일 귀족 펠리페 2세가 사랑했지만 정치적 희생양으로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마르가레테 폰 발데크의 이야기도 '백설공주' 설화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이같은 다양한 버전의 '백설공주' 설화를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구축한건 역시 그림 형제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들이 1812년에 발표한 동화집 '그림동화' 초판에는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기엔 다소 충격적이고 잔혹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림 형제는 재판을 거듭할 수록 내용을 순화시켜서 오늘날의 아동용 버전에 이르게 됩니다.

작년은 '백설공주'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헐리우드에서는 모처럼의 이벤트를 맞이하여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와 루퍼스 샌더스 감독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라는 두 편의 '백설공주' 영화를 내놓았는데, 타셈 싱 감독은 백설공주를 의적으로 재해석한 반면, 루퍼스 샌더스 감독은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액션 히어로로 해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편 '백설공주'가 처음 영화화된 것은 1902년 흑백 단편영화인데요, 이 작품은 현재 남아있는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 다음으로 1916년에 만들어진 시얼리 돌리 감독의 무성영화 [백설공주]는 현존하는 '백설공주' 영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주연의 맡은 마그리테 클락의 미모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봐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러다가 '백설공주' 영상물로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이 바로 1937년 월드 디즈니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입니다. 풀 프레임 방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손꼽히며 월드 디즈니를 애니메이션 명가로 인식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 Walt Disney. All rights reserved.

이후로도 '백설공주'는 여러 나라에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수없이 많은 작품들로 재탄생을 거듭했는데요, 이제부터 소개할 작품은 바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벡설공주]입니다. 그것도 영화로 말이지요.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까?

1964년에 만들어진 [백설공주]는 원작의 모티브를 가져와 한국의 실정에 맞추어 궁중사극으로 개작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배역부터 범상치 않은데요,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김지미와 영원한 팜므파탈 도금봉을 두톱으로, 김진규, 허장강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합니다. 연출은 주로 서민적인 멜로물에 장기를 보였던 민제(aka 박구) 감독이 맡았지요.

우선 스토리부터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마달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합니다. 마달의 왕은 아내를 잃은 뒤 외동딸인 백설공주(김지미 분)를 키워오다가 매력적인 새왕비(도금봉 분)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새왕비는 병목대감(허장강 분)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지요. 두 사람이 왕과 충신들을 제거하고 나라를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찰나 백설공주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 대한연합. All rights reserved.

이제 왕비의 눈밖에 난 백설공주는 킬러로 고용된 군인의 은혜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 구덕산에 몸을 숨기러 갔다가 일곱명의 난장이를 만나 그들과 생활을 합니다. 백설공주가 살아있음을 안 왕비는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고, 궁궐 내부에서는 왕비와 병목대감을 몰아내기 위한 충신들의 반란이 진행됩니다.

이 작품은 암투와 반란, 음모가 판을 치는 궁중내부의 정치적 사건을 '백설공주' 모티브와 연결시켰습니다. 물론 원작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전혀 풍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디까지나 원작의 주요 갈등요소가 계모와 백설의 '여성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자존심'이었다면 한국판 [백설공주]는 여느 궁중사극처럼 '권력싸움과 암투'가 주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 대한연합. All rights reserved.

따라서 본 작품에서는 원작에서 비교적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할 몇몇 요소들이 빠져 있거나 혹은 다른 요소들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백설을 돕는 일곱난장이의 경우 러닝타임의 절반이 지난 이후에야 나오는가 하면 백설과의 유대관계나 활약상도 그저 기계적으로 짜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작에 나오는 인물들이니 어쩔 수 없이 등장시켰다는 느낌이랄까요. 타이틀롤인 백설공주의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은 반면 새로 투입된 악역인 병목대감의 비중이 제법 크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백설공주]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를 배제시켰다는 것입니다. 가령 원작에서 왕비가 분장한 마녀가 아닌 방물장수 할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나 '누가 가장 이쁜지' 알려주는 마법의 거울을 시종으로 둔갑시킨것이죠. 시종의 이름이 '거울'이라는 것도 빵 터지지만 직물장수 할멈이 독사과 신공을 시전하려다가 난장이에게 발각되어 냉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동화를 기초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볼 때 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 대한연합. All rights reserved.

무엇보다 이 작품이 괴작스러운 점은 영화의 장르나 시대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서양식으로 차려입은 의상과 정통 한식 의상이 뒤죽박죽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난장이가 스키를 타고 다니는 등 소품이나 의상이 종잡을 수 없이 제 멋대로 튀어나오고, 음악은 [벤허]의 OST를 무단도용한 것을 비롯해 서양식 오케스트라 연주스타일의 OST가 뜬금없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나름 대작급 영화임을 표방했음에도 이러한 두서없는 프로덕션 디자인이 당시 한국영화의 한계를 느끼게 해 주지요.

그러나 [백설공주]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더 많은 작품입니다. 안전한 영화만을 선호하는 최근의 한국영화계와는 달리 그 옛날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각색과 장르에 도전해 한국영화를 보다 풍성하게 만든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은 요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러한 영화들을 접할 길 없이 추억으로의 이름으로만 간직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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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르베로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형제의 초판본 백설공주도 충격적이지만, 국적 불명의 한국식 각색도 이채롭네요.

    궁중에서는 항상 여인들의 암투만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계모와 전처 소생의 갈등까지

    모두 한국식 클리셰 일색이지만 나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2013.09.27 12:46 신고
  2. RGM-7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달이라 해서 순간 기갑계 가리안을 떠올린..
    이 얘긴 별바다의 서고에서나 할 얘긴데;;;;

    차라리 이렇게 재해석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게 더 창의적인 것 같습니다.

    2013.09.27 16:12 신고
  3. tktkvhfhqlf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전혀 모르던 정보가 많아 재밌었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ㅋ

    2013.09.27 17:56 신고
  4. 적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에

    소품이나 의상이 조잡을 수 없이 제 멋대로 튀어나와고,

    라고 오타가 났습니다. 종잡을 수 없이 라고 쓰려했던거겠지요.


    암튼 이런 스타일로 다시 말끔하게 영화 한편 만들어도 충분히 재밌을것 같은데요.

    2013.09.27 19:44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외국영화의 한국식 리메이크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을 듯 한데 의외로 이런 시도가 많지 않아요. 그런면에서 얼마전 개봉된 [감시자들]은 꽤 괜찮은 편이었죠.

      2013.10.01 12:45 신고
  5. <투머로우>김기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글 남깁니다. 물론 마감 중이고요.
    "그 옛날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각색과 장르에 도전해 한국영화를 ..."
    저는 이 부분이 왜 우습죠? ^^

    2013.09.27 21:03 신고
  6. 정체불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영화는 상당히 흥미롭네요. 백설공주를 한국식으로 각색했을줄은...
    이런건 지금시도해도 흥미로울텐데 훨씬 과거에 먼저 도전을 했다니, 이건 진짜 궁금하네요. ^^

    2013.09.27 21:56 신고
  7. 김효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보니 괴작범주에 안 넣으셔도 될뻔했네요

    2013.09.29 20:49 신고
  8. 블랙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스펀지'에서 소개된적 있었죠.

    2013.10.01 11:11 신고
  9. BLUEnLIV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시도가 있었군요.

    2013.10.06 12:57 신고
  10. grea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내용면에서는 상당히 깊이 있을 것 같이 느껴지는 작품이네요. 판타지적 요소가 많이 없고 갈등요소가 권력싸움,당쟁싸움 암투 이런 류라니 보고싶어지네요

    2013.11.30 18: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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